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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지킹엔의 증언 B급 꽁트

흥분과 전율과 감격과 환희와 ....
이기다로君은 지금 도저히 진정할 수 없다.
쿵쾅거리는 박동소리가 도서관 전체를 울리는 듯하다.
그는 그 오래된 팜플렛을 가슴팍에 안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소책자를 열어본다.



도대체 여긴 어디이고, 저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데 저이에겐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분명 소환을 당해 이리로 온 것인데...

335년만에 나를 소환한 것은 다행히 칼5세나, 리햐르트가 아니었다.
아, 울리히였다면 춤이라도 덩실 추었을텐데 그도 역시 아니었다.
유태인처럼 보이는 프로이센 사람 같은데 처음보는 인물이다.

  - 페르디난드 라쌀씨?
  - 아, 엥겔스씨, 반갑습니다.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흠, 라쌀 생각했던 그대로군. 아무튼 반갑네.
  - 그런데 마르크스씨는?
  - 그 동무는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금방 올 테니 기다리자고.

음, 저 유태인의 이름은 라쌀이군. 대머리 영국인은 엥겔스고...
엥겔스? 들어본 적이 있는 듯 한데...
그래, 토마스 뮌쩌에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오늘 내 유토피아를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날 것만 같은데...

그런데 왜 저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거야?
위대한 혁명가께서 여기 있는데 수인사라도 먼저 해야 하는 게 예의 아닌가?

  - 라쌀 동무, 각설하고 말하겠네. 자넨 왜 휠젠에게 먼저 원고를 보냈지?
  - 제 관심은 오직 이 땅에서의 성공적인 노동운동이죠.
  - 그렇다면 자넨 프로이센의 나폴레옹이 될 셈이었군.
  -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폴레옹은 지킹엔의 전철을 밟았죠. 
    지도자가 너무 성급하면 혁명은 실패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제가?
  - 그 점에 대해선 나도 동의할 수 없군.
    혁명의 주체를 영웅심에 휩싸인 양아치로 보다니...

나를 나폴레옹의 원조격으로 봐주다니 이거 영광이군. 
하긴 내가 트리어를 함락만 했어도 새로운 역사가 열렸을 텐데...

  - 어, 마르크스동무가 왔군. 동무, 먼저 심심한 조의를 표하네.
    둘째마저 폐렴으로 죽게 되다니, 안타깝다고 밖에 할 말이 없군.
  - 엥겔스 동무, 아직 우리 가족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네. 
    올해는 1831년이라는 걸 기억하게.
  - 이거 실망이군, 앞으로 올 지 안 올 지 모르는 불행을 미리부터 준비하고
    혁명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한 것은 자네가 먼저 아니었던가.

도대체 이 인간들은 뭐하는 놈들이야?
그나마 저 라쌀이라는 프로이센 사람이 가장 마음에 드는군.
꼭, 그가 날 소환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 마르크스씨, 반갑습니다. 제가 그 장문의 편지를 보낸 라쌀입니다.
  - 참, 손님이 있었군. 마르크스 동무, 이 친구는 프로이센의 나폴레옹일세
  - 무례하시군요, 엥겔스씨
  - 그래, 친애하는 나폴레옹 동무, 보내준 작품은 잘 읽어봤소만
    도대체 왜 나와 엥겔스에게 보여줬는지 이해는 할 수 없었소.
  - 아마 자네가 실러 보다는 세익스피어가 되어야한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겠지
  -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걸.
  - 물론 나도 알고 있지. 나 역시 주인공이 뮌쩌가 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셈이니까.

왠지 라쌀이 둘에게 공격 당하는 느낌이다.
라쌀이 몇 번 반론을 펴려 하지만 이내 묵살당하고
둘의 만담은 계속되었다.
이제 대충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 것 같다.

  - 물론 나나 엥겔스동무가 자네의 희곡에 대해 성격이나
    전형에 대해 말 할 순 있겠지만
  -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네. 이미 둘은 그렇게 합의 했지.
  - 우리에게도 미학적인 이론체계나
    문학의 토대가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필요하긴 해.
    하지만 그 텍스트로 자네의 희곡은 어울리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네.
  - 자네에겐 미안한 얘기이지만, 혁명적 미학에 관한 기조가 되는 토론이
     라쌀 논쟁이나 지킹엔 논쟁으로 불린다면 이건 사회주의의 창피가 되지 않겠나
  - 자네의 편지가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인정하네
    사회주의에도 미학적 이론 정립이 필요하다는 아젠다를 제시해준 셈이니깐.
  - 그 부분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난 무조건 마르크스 동무 편이야.
    그가 왜 대단한 문장가인 줄 아나? 안 읽은 책이 없을 정도의 독서편력 때문이지.
  - 그러니까 엥겔스 동무, 발자크 정도면 어떨까 하네만...
  - 적극 찬성이네. 적어도 발자크 급은 되어야겠지.
  - 아마 후대사람들은 우리의 이 토론을 인간희극 논쟁으로 기억하겠군.
  - 발자크 논쟁이면 또 어떤가? 하하하


둘의 지겨운 만담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라쌀은 슬며시 나가버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라쌀이 여기서 꼬리를 내리면
내 운명도 그처럼 된다는 것이다. 성급히 라쌀을 따라 나섰다.




오, 대단해.
해묵은 지킹엔 논쟁을 한방에 보내버릴 역사적 기록물이야.
이기다로君의 눈에선 이미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1858년 영국, 독일 등지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팜플렛이
왜 도쿄대학 도서관에 있는지,
게다가 왜 영어나 독일어가 아닌 일본어로 쓰여져 있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은 채




꽁트B의 원고료 앵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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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ephas 2009/09/19 04:09 # 답글

    전개가 흐릿한 걸로 봐서 꽁트보다는 엽편소설이네요.
    저도 작가에요. 블로그에 제 글들 올리고 있구요.
    링크 추가하고 좀 둘러보다 갈게요. 잘부탁드립니다.
  • 꽁트B 2009/09/19 13:35 #

    반갑습니다. 전 작가는 아니고요, 그저그런 카피라이터입니다.
    그런데 소설 분류할 때, 길이에 따라 양놈들은 콩트, 솟스토리, 노벨,
    우리는 나뭇잎(손바닥), 짧은거, 긴거 이렇게 부르는 거 아니었나요?
    콩트와 엽편이 플롯이나 스토리구조에 따라 나뉜다는 님의 의견에 잠시 헷갈리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소설수업시간에 그런 건 배운 적 없는 듯 하네요.
    뭐, 나뭇잎이면 어떻고 꽁트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B급을 지향하는, 스트레스 해소(어쩌면 더 쌓일 수도 있지만) 공간인데요.
    종종 놀러오세요. 저도 링크 걸고 종종 놀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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