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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머리 돌연변이 멸종에 관한 보고서 B급 꽁트

  십여년 전 나는 파란머리 외계인이라고 불리는 종족을 만난 적이 있다. 요즘에는 볼 수가 없고 이미 멸종했다는 보고도 있지만, 한때 그들은 전국 곳곳에서 서식하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그 중 한 일족에 관한 것이다.

-서식지에 관한 보고서-

  그들의 주요 서식지는 우리집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서울시 중랑구 묵동과 노원구 공릉동의 경계선 부근. 그러니까 중랑천의 작은 지류 둔치를 공원화시킨 곳, 묵공공원이다. 먼저 묵공공원의 이름에 대한 유래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묵공공원은 제1묵동교와 제2묵동교 사이의 둔치를 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원래는 한 시민단체의 제안으로 산비둘기공원으로 이름이 정해질 뻔 했는데, 중랑구청 쪽에서 공원명에 제동을 걸었다. 산비둘기가 노원구의 상징새였기 때문이다. 비록 공원부지는 공릉동에 속해 있지만, 중랑구 예산으로 만든 공원에 노원구의 상징을 이름으로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중랑구의 입장은 새이름을 쓰려면 까치공원으로 하든지 아니면 묵동교 부속 공원이니까 묵동공원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공릉동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어차피 공원을 주로 이용할 사람은 공릉동 사람들인데 왜 묵동공원으로 하냐는 주장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슬슬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묵동 사람들과 공릉동 사람들이, 그리고 노원구청과 중랑구청이 반목하는 와중에 누군가 현명한 대안을 내 놓았다. 석계역장이었다. 석관동과 월계동의 한글자씩 딴 석계역의 전례를 따라 원만하게 해결하자는 제안으로 두 구청간의 지리한 다툼은 끝이 났다.

  그렇게 어렵사리 공원명이 정해진 묵공공원은, 그러나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라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쉴 공간이라곤 해발 143m의 봉화산 말고는 없었던 묵동 주민에게나, 입장료를 내야만 입장할 수 있는 태릉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었던 공릉동 주민에게나, 모두에게 환영 받을 법한 공원이었지만 두 주민간에 남은 앙금 때문에 어느 쪽도 공원을 이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그런 이전투구 따위엔 관심 없던 내가 묵공공원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공원을 거니노라면, 잠시나마 베토벤 교향곡 6번 속에 푹 빠진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비록 매년 서울시 재정자립도 꼴찌를 면치 못하는 중랑구청의 작품일지라도, 공원은 공원이니까.

  그들을 처음 본 그날도 평소처럼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묵공공원을 산책하는 중이었다. 약간은 조야하게 세워진 물레방아 옆의 벤치에 앉아 담배 한 개피를 물려는 순간,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 공원에 사람이 있었나?'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내 맞은편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닌 머리가 파란 색인 생물체들이 둘러 앉아 무언가를 주섬주섬 먹고 있었다. 그제서야 묵공공원에 산다는 외계인에 관한 소문을 떠올렸다. 그랬다. 사람들이 묵공공원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이름을 둘러싼 감정싸움의 앙금 때문이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파란머리 외계인에 관한 소문 때문이었다. 그들과 마주친 몇몇 사람은 납치 되었다가 각종 실험을 당하고 난 뒤에야 풀려난다는 소문.

    '아뿔싸, 소문이 사실이었어.'

  이미 다리는 후둘거리기 시작했고 심장은 요동쳤다. 걸리면 끝장이다, 웅얼웅얼 되내이며 최대한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몸을 움직였다. 내가 그 자리를 어떻게 벗어났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나를 못 보았고, 나는 그들을 봤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스톡홀름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고생을 하고나서 나는 오히려 그들이 궁금해졌다. 그 다음날 바로 용돈을 털어 M9 쌍안경을 샀다. 그리고는 매일 같이 그들을 관찰했다.


-행동과 번식에 관한 보고서-

  그들에 관한 소문은 사실인 것도 있지만 잘못되거나 과장된 것도 많다. 손에서 광선이 나간다거나 하늘을 난다거나 하는 소문은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말로 '오공이'라는 것을 먹곤 했는데, 그것이 그런 힘의 원천이 되는 듯 보였다. '오공이'를 먹으면 그들의 힘은 환상적이다. 우주괴물을 소환하여 격투를 벌이기도 하고,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늘을 날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외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우주괴물을 소환하는 능력이 있다면 1년에 한번은 고향별에 갔다올 법도 한데 5년동안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게다가 심층 관찰을 해 본 결과, 그들은 모두 지구인 부모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여의도 일대에 서식하는 '꼴통에스퍼족'처럼 돌연변이인 것이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대단했던 일은 지옥의 문지기와 벌인 혈투였다. 돌연변이가 된 지 얼마 안 된 새끼 파란머리가 만용을 부려 우주괴물 중 가장 강하다는 지옥의 문지기를 부른 것이 화근이었다. 그 새끼 파란머리는 곧 망신창이가 되었고 승리는 지옥의 문지기에게 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파란머리들이 '오공이'를 먹고 싸움에 합류했다. 자욱한 포연과 레이저의 섬광 때문에 싸움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이번에도 지옥의 문지기가 더 유리해보였다. 누군가 금기의 비기 '부타니'를 쓰지 않았다면 아마 묵공공원의 파란머리들은 그때 다 멸종했을 것이다. 간신히 지옥의 문지기를 물리친 순간, 펑하고 화염이 일었다. 누군가 승리의 축포를 울린 것이다. 그 이후 묵공공원의 파란머리들은 자글자글한 비늘 같은 피부를 다른 파란머리들에게 자랑처럼 보여주곤 했다.

  사람들이 가장 우려했던 납치에 관한 소문은 불행히도 사실이었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심한 경우엔 하루에 네 명까지 납치 당하는 것을 봤으니 말이다. 그들의 납치수법은 늘 똑같았다. 누군가 자신들의 서식지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면 그들 중 제일 비리비리한 두 마리가 그 납치대상자에 은근슬쩍 다가간다. 그리고는 납치대상자의 팔짱을 끼고 이렇게 묻는다.

  "안녕, 너 대상이 알지?"

  납치대상자가 어리둥절해하거나, 딱부러지게 대답을 하거나 결과는 매한가지다. 파란머리가 팔짱을 꼈다면 그는 이미 당했다고 보면 확실하다. 비리비리한 두 마리가 누군가를 납치해 오면 그들은 우 모여서 "센타까기"라는 실험을 하는데, 그 실험이라는 게 대단히 참혹하다. 더 심한 것은 실험을 마치고 나서도 괜히 납치대상자를 두들겨 팬다는 것이다. 사람을 패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납치 당한 쪽이 재수가 없었던 것일 뿐이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번식능력이다. 그들은 우리의 관점으로 본다면 무성생식을 한다. 물론 파란머리 돌연변이는 핑크머리 돌연변이들과 정사를 나눈다. 그것도 매우 자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번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놀이다. 마치 우리가 담배를 피우거나 차를 마시는 정도의 일인 것처럼 보였다. 아침이 되면 그들은 다시 일반적인 지구인으로 변신하는데 이때가 돌연변이들이 무성생식을 하는 시간이다. 그들은 오락실 등을 돌며 돌연변이 후보생을 포섭한다. 포섭된 후보생들은 밤마다 돌연변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는데, 그 기간동안 그들은 후보생 몰래 돌연변이 유전자를 이식하는 것이다. 유전자가 이식된 후보생 중 80%는 일주일 이내에 파란머리 돌연변이가 된다. 그들의 특이한 번식방법을 관찰한 나는 그것을 기생번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중에 이 번식방법을 여의도에 살고 있는 '꼴통에스퍼족'들도 사용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들이 외계인이 아니란 것이 보다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그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정부는 파란외계인과의 전쟁을 선포한 적도 있지만 그들이 멸종한 것은 그 때문은 아니다.


-멸종 혹은 진화에 관한 보고서-

  사실 나는 그들이 정확히 언제 무엇 때문에 멸종했는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이제 묵공공원에는 그들이 없다는 것이다. 제대를 하고 나서 그들을 찾아보려고 무던 애를 써봤지만 한번도 볼 수 없었다. TV나 신문에서도 더 이상 파란머리에 관한 언급이 없다. 확실히 멸종한 것처럼 보인다. 그 왕성한 번식능력을 자랑했던 그들이 이토록 빨리 사라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파란머리 외계인 전문가로 불리는 강지원씨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진화를 해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이지 멸종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더 악랄해지고 교묘해져서 부지불식간에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니 모두들 파란머리를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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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불탄 2009/09/17 22:51 # 삭제 답글

    SF 콩뜨였네요.
    파란머리를 보면 냅다 도망쳐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읽어보았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X파일의 멀더 요원이 나래이션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잘 읽어보았습니다.
  • 꽁트B 2009/09/18 08:37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재미있었다니 더더욱 고맙습니다.
  • 2009/09/18 11:4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꽁트B 2009/09/18 13:19 #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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